휴가라서 맘편하게 리모컨 들고 굴러다니면서 한일전을 봤다.
이승엽 역전 투런홈런에 대한 감상은 넘치도록 많을테니 거기에 뭘 더할 건 없고...
SBS 김성근의 해설은, 역시 현업 감독이라서 그런지 다른 해설들과 수준이 달라 보였다. 일본 야구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는 것 같고, 투구 하나 두개를 보고, 타자의 대응을 보고, 바로 투수와 타자의 컨디션을 툭툭 말하는 것이, 정말 guru 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분야에서든 저 정도의 눈을 갖기 위해선 얼마나 많은 수련과 경험이 드는 것일까?
이대호가 걸어나갔을 때, 김경문 감독은 이대호 대신에 정근우를 대주자로 내보냈다. 김성근은 불안한 듯, 아직 9회 말에 한 번 더 기회가 있을텐데 왜 바꾸는 것인지 의문을 표시했다. 9회말에 이대호 타석에서 주자가 있을 가능성까지 언급하면서.
그러나, 결국 김경문 감독의 도박은 성공했다. 그것도 척 봐도 굉장한 공을 던지는 후지카와를 상대로 말이다. 김경문 감독이 영혼을 악마에게라도 팔고 작전을 구사하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그리고 8회 일본팀을 "말아먹어온" (김성근 해설위원의 표현) 이와세가 등장하고 주자를 루상에 내보냈다. 위기의 조짐. 선동렬의 감독으로 익숙한 호시노 감독이 직접 경기장에 나와 이와세와 말을 나눈다. 어떤 말들이 오갔을까? 혹시 "난 너를 믿고 있다. 네 명예를 회복할 수 있는 기회를 빼았고 싶지는 않다. 이와세!"라는 말을 건네지 않았을까?
그리고 이승엽은 이와세에게 홈런을 뺐어내고, 팽팽하던 2:2는 2:4로 한순간에 바뀌어 버린다. 이와세를 믿었던 호시노 쪽에서든, 이승엽을 믿었던 김경문 쪽에서든 모두 재미있는 드라마다.
우울한 표정으로 화면에 잡히던 이승엽과 홈런을 쳐내는 이승엽을 보면서, 그리고 하나같이 드라마 같은 접전을 펼치는 한국 야구를 보면서, 내 삶이 혹시라도 누군가 잘 짜놓은 각본에 맞추어진 가짜는 아니었을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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